전통 오일장 – 사라지는 장터의 기억
장터가 있는 날, 마을은 살아난다내가 처음 오일장을 경험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외갓집이 있는 시골마을이었다.평소엔 한적하기만 하던 마을 골목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트럭과 리어카, 작은 천막들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노란 두부를 써는 칼 소리, 방금 볶은 깨를 파는 아주머니의 구수한 사투리, 그리고 어깨를 부딪히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그날 마을은 평소보다 훨씬 더 생기 있었다. 마치, 오일장이라는 마법의 주문이 마을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은 듯했다.오일장은 ‘5일마다 한 번씩 서는 장(場)’이다.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처럼 끝자리가 3과 8인 날짜에 열리는 ‘3·8장’이 있는가 하면, 1과 6, 혹은 4와 9에 서는 장도 있다. 농경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이런 오일장이 지역 경제와 ..
2025. 5. 2.
상여소리, 공동체가 떠나가는 이를 보내는 소리
1. 마을 끝자락, 느린 행렬이 시작될 때아득한 어느 마을의 새벽.바람이 산 너머에서 내려오고, 흙길 위에 발자국이 차곡차곡 새겨진다.그 가운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움직인다.흰 천으로 감싸인 관이 나무 상여에 실리고, 그 앞에선 사내들이 일정한 박자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에헤이야데야~ 나가세~”이것이 바로 ‘상여소리’다.사람 하나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길목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잇는 소리.울음인지 노래인지, 주문인지 탄식인지 모를 그 목소리는마치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이를 품에 안고, 다시 태우는 의식처럼 들린다.상여소리는 단순한 노동요가 아니다.죽음을 맞이한 이와, 그를 보내는 사람들의 감정이 뒤섞인한 편의 서사이고, 공동체의 기도이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픈 축복이다.장례 행렬은 조용하지 않..
2025. 5. 2.